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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1 뜨거운 행복

keepgroovin' 2009. 7. 12. 15:17
행복하다는 느낌은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것이 아니다.
다소 나른하고, 아무 걱정 없는 상태로 조용히 얌전히 마음 속에 자리한다.
행복이라는 친구는 온유한 성품을 지녀, 다른 걱정이 나타나면 금새 자리를 내준다.
대신 다른 걱정이나 괴로움이 없을 때는 언제든 변치 않고 나를 찾아와주는 충실하고도 믿음이 가는 친구다.

나는 지난 몇 년간의 다양한 실험과 끊임없는 개척으로
몇가지의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 확실한 방법을 알아내었다.
어제는 행복을 느끼기에 꽤나 확실한 날이었다.

언제라도 하늘이 뚫릴 듯, 흐리고 시원한 여름 날씨의 홍대에서
언니와 B-hind에서 색깔이 선명한 샐러드를 맛있게 먹고,
커피와 아포가토로 속을 채운 뒤.

상상마당 사이키델릭 3rd 공연을 보러갔다.
엄청 재밌었다.

주변에 둘러보면 죄다 젊다 못해 어린 10대들이라서
우리는 나이들어서 튈거야 라고 믿으면서ㅎ 몸 사려가며 은근히 재밌게 놀았다.

플라스틱 데이, 폰부스, 검정치마, 포니, 고고스타, 전국비둘기연합, 국가스텐

하나같이 어찌나 실력들이 출중한지 특히 국가스텐은 감탄하는 기분으로 봤다.
잘난 체 하는 게 티는 나지만, 그래도 잘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언니는 어제 고고스타를 처음 봤다고 하는데, 충격적(!) 이라고.
고고스타를 보면서 관객들이 미쳐있을 때 공연장을 내려다보는 2층 staff room의 암울한 느낌이 잊혀지질 않는다 ㅎㅎㅎ

나 또한 광기어린 10대 소년들과 같이 슬램했는데, 한 세 곡 하니까 힘에 부쳐서
더이상 탱탱볼 놀이를 할 엄두가 안 나서 구석지에 가서 혼자 놀았다. 이제 놀기위해서라도 운동해야 한다 T.T

축약하자면 고고스타는 생또라이.
관객들이 미치면서 놀게 만들기 위해서 자기는 진짜로 미친다는 그의 철학처럼
잘 논다. 그러나 그보다 진짜 또라이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특이함 때문.
무당처럼 춤 추다가 빨간 속옷을 보여주고, 그 뽕끼 가득한 음악을 틀면서 "여러분, 이 노래 슬픈 노래예요."하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D.I.S.C.O"를 부르는데- 학을 뗀다 학을 떼

출렁이는 마룻바닥.
인류학자가 와서 봤다면 '자신의 안위를 고려하지 않는 폭력적인 충돌'.
외국 뮤지션이 와서 봤다면 '일본 안 들르고도 한국에만 오고 싶을 정도로 최고로 잘 노는 관중들'.
실컷 파이팅과 발길질을 하다가도 떨어진 안경알을 주워 찾아주는 순수하고 착하고 냄새나는 소년들.
발열 2만도! 어제 상상마당 지하 2층에는 마그마가 끓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