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353/0000044945?date=20230520
지은이가 푸가체프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옛 소련이라는 배가 난파하기 직전 가장 먼저 낡은 공산주의라는 배를 버리고 자본주의라는 새 배로 갈아탄 집단은 체제 수호를 담당했던 KGB 요원들이었다. 이들은 소련 시절부터 범죄조직과 손잡고 석유·귀금속·생활용품을 독점하고 검은돈을 축적했다. 이를 통해 소련이 사라진 러시아라는 공간에서 권력 네트워크를 계속 유지했으며 돈으로 법률 등 서방 시스템을 한껏 활용하며 국내외에서 계속 활개쳐왔다. 지은이는 푸틴과 수하들이 만든 이런 체제를 ‘KGB 자본주의’로 부른다.
런던그라드에는 또 다른 용도가 있다. 푸틴의 눈밖에 난 사람을 철저하게 몰락시키는 ‘잔혹극’ 연출이다. 실로비키들은 굳이 모스크바의 비공개 법정으로 끌고 오지 않아도 ‘배신자’를 이곳에서 괴롭히고 피를 말릴 수 있다. 2013년 런던 근교 별장 욕실에서 평소 쓰던 스카프가 목에 감긴 채 발견된 올리가르히 보리스 베레좁스키 사건에서도 의문의 ‘냄새’가 난다. 신원 미상의 지문이 발견됐지만 런던 경찰은 자살로 결론지었다.
푸가체프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푸틴과 사이가 벌어지면서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빼앗겼다고 주장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푸가체프가 러시아중앙은행의 자산 7억 달러를 빼돌렸다며 영국 법률회사를 내세워 런던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푸가체프는 소송에 더해 폭발물 등으로 신변 위협까지 받자, 공포의 ‘라스토츠카(봄을 알리는 첫 제비)’가 왔다고 여겼다. 그는 영국 법원이 자신을 러시아로 보낼까봐, 자국민을 러시아로 송환하지 않는 프랑스로 옮겨 국적을 얻고 철통 같은 경비시스템과 수많은 경호원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