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삼청동에 카메라를 들고 모여든 사람들이 싫다

keepgroovin' 2009. 3. 21. 20:32
ㅇ나는 왜 그들이 싫은가?
 자신의 구매하는 물건들의 합집합이 자신의 정체성을 의미하는가. 내가 선택하는 것의 결집이 나다? 이는 상당히 근대적인 사고의 반영이다. 
 근대식의 사고란, 과학적 사고와 더불어 개인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근대에서는 모든 사고에 각 개인은 다른 사람과 대별되는 자기 만의 특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게 된다.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자기라는 관념이 보편화되면서 개인의 취향 또한 특수한 것으로의 대접을 받게 된다.

ㅇ개인주의 시대 = 스스로에게 도취된 시대
 근대 자서전이라는 장르의 효시로 꼽히는 장 자크 루소. 루소는 스스로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공상하는 것에 진정한 즐거움을 느껴서 자서전을 쓰게 되었다.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는 그. 그런 자아에의 도취감은 곧 근대적 개인주의 사회에서 유리된 자아로 살아가는 개인의 수축적 만족감이다.
 현대 정보기술의 발달로 개인 미디어가 보편화 되면서, 이전과는 유례없는 규모로 자서전이 쓰여지고 있다. 과거에 일기 형식으로 비밀스럽게 서술되는 준-자서전들과는 달리 지금의 일기와 자서전은 공개되고 공유된다. 개인정보에 대한 공식적 보안은 강화되지만 내면적 개인 의견과 감성이 공공연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에 의한 서술의 증가로 이전에 비해 보다 자유로운 자기표현과 심화된 의사소통을 가능해졌다.
 그러나, 난 삼청동에서 DSLR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블로그나 싸이월드에 가서 자신에 의해 구성되고 채택된 것들에 대한 자랑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또 자기만의 자서전을 쓴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한 반응을 보이고 싶다. 위에 서술한 정기능에도 불구하고 막상 내가 다른 사람들의 자서전을 보게 될 때는, 공감할 수 없는 지극히도 자기화된 감정들의 나열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그런 작업들은  단순히 자신의 기억들에 대한 보관 수준을 넘어선 자기에게 의미 부여하는 식에 불과했다. 마치 "그래서 어쩌라고?"는 식의 짜증섞인 대응까지도 불러낼 만한 소소한 이야기들의 비빔밥 같은 소위 자기만의 감성이라는 것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한 것이다. 탁자에서 얼굴을 맞대고 앉아 '나는 연예인 A는 느끼해서 싫어, 연예인 B는 거만해서 싫어'와 같은 필요없는 정보들에 대해서 예의있게 들어줘야하는 것처럼 생각만해도 질린다. 그럼에도 개인미디어를 통해 거론되는 이야기들은 그 사람의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아무 의미 없어, 혹은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누가 듣는다고 그래?와 같은 반응으로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실 그런 사람들의 서술 중에 정말 눈여겨 볼만한 주옥같은 정보들도 있기 마련이지만, 혹은 자기에의 몰입의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대체로 자본주의의 정점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세뇌당한대로, 학습화된대로 앵무새처럼 흉내내는 행동방식을 하는 것이 대부분인 것이다. 멋있어보이는 것을 수집하고, 그래서 그것을 하고 있는 자신이 멋있게 생각되지만 그것이 왜 멋있으며 누가 만들었으며 실제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부족하다. 그저 하라는대로 보이는대로 생각하고 따를 뿐이다. 그런 참을 수 없는 가벼움들을 중시할래야 할 수가 없다.  

ㅇ착한 척 하면 착해지나?
  난 그런 각 개인들이 구성한 넘치는 감성들을 받아주는 데에 피곤함을 느낀다. 진정한 문화인과 그 문화인의 작품을 소비함으로써 같은 지위를 부여받으려는 문화-예정-인의 구분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이에 대해 내가 짜증을 내는 것은 자기만의 특수함을 소비를 통해 부여하는 사람들의 작업이 patchwork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트렌디한 척 하면 정말 트렌디하나? 이는 모두 라깡의 거울에 비친 상을 보고 자신의 모습으로 착각하더라는 자아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삼청동에서 길을 가득 채울 정도로 수많은 행인이  DSLR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경악을 하고 이런 개인들의 감성 범람의 시대에 대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모두가 감성적인 척을 하는 것이 단순히 아니꼽기 때문일까.
  어쩌면 난 이런 자기만의 이야기들의 범람이 개인들에게는 유희와 함께 스트레스 해소, 삶의 의미 부여와 같은 긍정적인 기능을 가지기 때문에 즐거울지는 모르지만, 사실은 별로 의미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기 정체성만이 고유하다는 사실, 특별화된 상품들의 구매와 행동양식들을 체현시킴으로써 특수성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이런 식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 개인들의 사회는 따라서 모래알처럼 유리된 것이다. 
 개인주의 사회에서 감성의 범람은 .. 자기애의 심화 현상을 대변하는 것일까. 이는 자기 말고는 중요한 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서 자유로우나 삶을 지속할 수록 씁쓸해지는 개인주의라는 체제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근대적인 사고다. 라는 한 마디의 평은 구식이라는 뜻으로 들린다. 왜 그런가?
보통 그런 비평은 전근대적 사고다 라는 문장으로 표현되기 마련이다.
전근대가 아니고 근대인 이유는 왜인가?

※사실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내가 그들보다 문화적으로 우위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식의 매니악한 문화옹호인들의 편협함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나는 누군가를 문화적으로 배척할 정도로 고급화된 문화인도 아니다.
나는 문화라는 말이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말해지고 있는 것에 짜증을 느낀다. 그러나 이렇게 문화가 유행어가 되지 않았던 시기에 나같은 환경의 나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과연 문화를 안다는 게 가능했을까? 나는 진짜 문화가 무엇인지 아는가?

※왜 나는 이렇게 덜 폼 재기에 집착하는가? 왜 나는 진실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토악질 날 듯한 거부감을 느끼는가? 순수성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신의 도덕심의 우월감을 즐기는 것 아닌가?

※예술인들은 왜 대접받아야 하는가?